은퇴를 앞두고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최근 공연장 문을 두드리는 일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젊은 시절에는 업무와 육아에 밀려 미뤄두었던 문화 생활을 이제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표를 끊고 극장에 앉으면 낯선 용어와 낯선 소리 앞에서 어깨가 굳는 경우가 많다. 무대 위 배우가 내지르는 고음에 압도되어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감상 능력이 아니라 훈련 방식이다. 배우처럼 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 다만 소리를 듣는 근육을 따로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왜 지금 청취 훈련인가
공연 예술은 눈과 귀를 동시에 쓰는 장르다. 무대 장치와 조명, 의상이 시각을 붙잡는 동안 대사와 노래는 청각을 붙잡는다. 그런데 시각 정보는 익숙해서 대충 봐도 흐름을 따라가지만, 청각 정보는 훈련이 없으면 쉽게 놓친다. 특히 뮤지컬 넘버는 가사와 선율과 발성이 삼중으로 겹쳐 있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정보의 폭격이다. 여기서 많은 중장년 관객이 무너진다. 가사가 안 들리니 내용을 놓치고, 내용을 놓치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공연 자체를 멀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연 예술은 원래 소리를 정교하게 듣는 훈련을 관객에게 요구해 왔다. 19세기 오페라 극장에서는 관객이 대본을 미리 읽고 가는 것이 예의로 여겨졌고, 20세기 초 연극계에서는 배우의 발음과 호흡을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받아들이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음향 증폭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관객 쪽 훈련은 점차 사라졌다. 소리가 커졌으니 굳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린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폭된 소리는 정확히 들리지만 결이 뭉개진다. 배우가 의도한 미세한 떨림과 숨소리는 마이크를 거치며 평평해진다.
배우 흉내가 아니라 듣기 훈련이라는 발상의 전환
많은 사람이 공연을 깊이 즐기려면 발성법을 배워야 한다고 오해한다. 그래서 성대 훈련을 시작하거나 노래방에서 고음을 연습한다.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감상의 깊이와는 다른 문제다. 감상자는 소리를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요리사가 되지 않고도 미식가가 될 수 있듯이, 가수가 되지 않고도 훌륭한 청취자가 될 수 있다.
핵심은 소리의 층위를 구분해 듣는 습관이다. 배우의 목소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발음의 정확도, 둘째는 호흡의 길이, 셋째는 감정의 진폭, 넷째는 음정의 정확성, 다섯째는 음량의 조절이다. 이 다섯 층을 한꺼번에 잡으려 하면 아무것도 안 들린다. 한 번에 하나씩만 골라 듣는 것이 요령이다. 처음에는 발음만 듣고, 다음 곡에서는 호흡만 듣고, 그다음에는 감정의 진폭만 따라가는 식이다.
연극과 뮤지컬, 귀를 쓰는 방식이 다르다
연극과 뮤지컬은 소리를 전달하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연극은 대사로 상황을 쌓아 올린다. 배우의 말 한마디에 담긴 억양과 침묵이 서사의 대부분을 만든다. 그래서 연극을 감상할 때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반면 뮤지컬은 대사가 노래로 넘어가는 순간에 감정의 정점이 온다. 대사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 노래가 터진다는 구조를 이해하면, 어느 대목에서 노래가 시작되는지가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1970년대 이후 대형 뮤지컬이 확산하면서 관객은 화려한 군무와 무대 전환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결과 노래의 서사적 기능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뮤지컬 넘버는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이 폭발하는 지점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들으면 같은 곡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실제로 해볼 수 있는 청취 훈련 단계
첫 단계는 공연 전에 가사를 미리 훑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연은 줄거리와 주요 곡의 가사를 공개한다. 이때 가사를 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단어가 반복되는지, 어떤 단어에서 감정이 바뀌는지만 표시해 두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좌석을 정할 때 음향을 고려하는 것이다. 무대 정면 중앙은 시야가 좋지만 음향이 뭉치는 경우가 있고, 무대에서 조금 측면으로 치우친 앞쪽 자리는 발성의 결이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좌석마다 특성이 다르므로 여러 위치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세 번째 단계는 공연이 끝난 직후 5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운을 정리하는 것이다. 극장을 나서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면 방금 들은 소리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다. 어떤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는지, 어느 배우의 호흡이 유독 길었는지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감상의 밀도가 달라진다. 네 번째 단계는 감상문을 짧게 쓰는 것이다. 잘 쓸 필요는 없다. 세 문장이면 충분하다. 무엇을 보았는지, 어디서 귀가 열렸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들어볼 것인지 이 세 가지만 적으면 다음 관람의 기준이 생긴다.
소극장에서 시작하면 훈련이 빨라진다
대형 극장보다 지역 소극장이 청취 훈련에 유리하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서 배우의 호흡이 그대로 전달된다. 마이크를 쓰지 않는 공연도 많아서 발성의 결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작은 공연장에서 두세 편을 보고, 귀가 어느 정도 적응한 뒤에 대형 공연으로 옮겨 가는 순서가 효과적이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압도당하기 쉽다.
감상의 깊이는 결국 듣는 습관에서 나온다
은퇴 이후 새로운 관심사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결과를 서두르는 것이다. 한 편의 공연을 보고 “나는 공연 예술을 이해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 그러나 감상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듣기의 반복에서 자란다. 처음에는 배우의 목소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들리다가, 몇 편을 지나면 발음과 호흡이 분리되어 들리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감정의 진폭이 보이고, 마지막에는 음량의 미세한 조절까지 감지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같은 공연을 두 번 봐도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진다.
배우의 발성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대신 소리를 나누어 듣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가사를 미리 훑고, 좌석을 바꿔 보고, 공연 직후 5분을 비워 두고, 세 문장의 감상문을 남기는 것. 이 네 가지 습관만으로도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는 눈에 띄게 좁혀진다. 공연 예술과 음악 감상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훈련 가능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다음 표를 끊는 일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No Responses